| 제목 : 고교학점제로 원하는 과목 수강? 진학 위한 역선택 우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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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1-11-09 | |
농촌·소도시 학교는 다양한 수업개설 어려워…"교육격차 심화"

"192학점 채워야 졸업"…고교학점제로 바뀐 학교는 (CG)
[연합뉴스TV 제공]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오죽하면 고교학점제를 시행하지 않는 학교가 인기라고 하겠습니까? 여기로 전학 온 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대전·충남지역 일부 학교에서도 과목 선택 제도가 시범 운영 중인 가운데 일선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대전 유성구의 한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자녀를 둔 A(44)씨는 요즘 내년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만 생각하면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희망하는 2학년 개설 과목을 선택해야 하는데, 학교 측이 수강 인원을 공개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A씨는 "애들이 진짜 원하는 과목을 듣게 한다고 어느 과목에 몇 명이 지원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아이가 물리 과목을 듣고 싶어하는데, 비선호 과목이어서 수강 인원이 너무 적을까 봐 걱정"이라고 전했다.
다른 과목과 형평성 있게 평가한다는 차원에서 수강인원이 적은 과목에 대해서는 절대평가가 가능하게 했지만, 5명 이하의 소규모 과목의 경우 비록 1등을 하더라도 내신 1등급을 받을 수 없다.
현행 내신 9개 등급 체계에서 학생 수가 그보다 적어 내신 등급을 산출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
교육청은 13명 이하의 소규모 과목의 경우 등급을 내지 않고 학생부에 공란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일선 학교에 안내했지만, 학교의 재량으로 강제 사항은 아니다.
아이가 희망하는 이공계 대학에 지원하려면 선택 과목에 물리가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렵다고 다들 기피하고 수강 인원이 많아 일정 등급 이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과목에만 학생들이 몰리는 등 '눈치작전'이 치열한 상황이다.
A씨는 "대학 같은 고등학교라니, 꿈같은 이야기지만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며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고교학점제를 시범 도입하지 않은 학교를 골라서 간다고 할 정도"라고 전했다.

교육부, 고교학점제 도입 추진 박차…해결 과제 '산적' (CG)
[연합뉴스TV 제공]
대전 가오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안동수 씨도 이런 교과 과목의 역선택 문제를 지적했다.
안씨는 "역사 선생님이 꿈인 제자가 있는데, 60명이 듣는 수업에서 1등급은 2명 정도밖에 받을 수 없으니 희망하는 동아시아사가 아닌 생활문화나 사회윤리를 전략적으로 듣겠다고 한다"며 "'고교에서도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게 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진다"고 전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생소한 수업을 준비해야 하는 교사 입장에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안씨는 "3학년에 사회문제 탐구 과목을 신설했는데, 세계사·한국사·동아시아사를 전공한 터라 지리·윤리 과목을 새로 가르쳐야 해 부담이 크다"며 "게다가 제가 담임을 맡고 있는데, 수업을 듣는 반 아이들이 대부분 이동형 수업을 하느라 관찰할 시간이 없어 생활기록부에 기록해야 하는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에 내용을 다 채우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학생들도 처음에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대학 다닐 때처럼 'A+ 폭격기'인 과목을 골라 듣기도 하고 수업 분위기 또한 이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어차피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점수를 딸 수 있는 과목을 골라 들어야 하는데, 강요된 선택을 진짜 선택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읍·면 지역에 위치한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과목 선택에 제약이 더 심한 상황이다.
충남 금산지역 한 교사는 "도시의 경우 한 학교에 학급이 10개 이상이고, 교사 수도 적정 수준 이상인 만큼 다양한 수업을 개설할 수 있겠지만 농촌이나 소도시 지역 학교는 많아야 5∼6개 학급인데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수업을 개설할 수 있겠느냐"며 "인력 충원이나 교사 수급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교사 1명이 3∼4개 과목을 맡아야 해 수업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신 등급을 산출할 때도 한 과목에 학생 수가 너무 적으면 성적을 내기 어렵고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외국의 선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겠다지만, 국내 지방 실정에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학교 역시 고교학점제에 대비해 대학 연계 공동교육과정을 운영 중이지만, 지역에 대학이 1곳(중부대)뿐인데다 외부 전문가 등 인력 풀이 없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교사는 "학교를 개방하고 지역사회와 협력해 교육하겠다지만, 농촌에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도시와의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서열화된 대학 입시 제도와 수능 제도를 그대로 두고 고교학점제만 도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달 전국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대입제도 개편과 고교학점제 재검토를 위한 서명'을 진행한 결과 1만1천749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교육청 박진호 장학사는 "단계적 이행 방안을 마련해 교원 수급, 공간 부족 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며 "대전의 경우 학교 간 교과목을 공유하거나 대전지역 대학의 강좌를 수강할 수 있는 공동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등 대전형 고교학점제를 통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jyoung@yna.co.kr 2021/11/09 07:05 송고